오찬호 작가님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중 <차별한 적 없다고요?> 를 읽고..
둔감한 우리
오찬호의 <차별한 적 없다고요?>를 읽고
오찬호 작가의 <차별한 적 없다고요?>라는 글은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 수록된 글이다. 오찬호 작가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차별과 사회비판에 관한 책을 저술하였다. 차별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차별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활하며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17세기 미국에서의 흑인 노예제도와 우리나라의 신분제도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남녀 차별이나 인종차별까지 우리는 차별이라는 단어와 항상 공존한다. 하지만 차별이라는 단어에 기준이라도 세운 듯 우리는 차별인지 아닌지 논쟁을 벌이곤 한다. 차별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의 기준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차별은 무엇이었는지 나도 차별을 했는지에 대해 해답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의 목숨이 소중하다고?”는 차별의 기준에 대해 비판한다. 우리는 흑인이 범죄를 자주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이는 피부색만 보고 지레 의심하는 상황이며, 미국 사회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범죄자는 험악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지레 의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이를 당연하게 여겨 차별에 둔감한 사람이 된다. 저자는 흑인과 같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차별에 둔감해진 것이라 서술한다. n 번 방 사건을 보면 많은 여성이 피해를 봤고 그에 대해 성별 관계없이 모두가 분노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남성과 여성이 논쟁을 펼쳤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가족과 주변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범죄자들이 아닌 남성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또한 성범죄의 가해자가 대부분 남성이기에 일어난 차별이다. 흑인들이 과거에 범죄를 자주 저질렀다는 것을 근거로 하는 것은 차별이라면 “여성의 안전은 중요하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 옆에 “남성의 생명도 중요하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은 차별하는 것이 맞을까 이것 또한 흑인과 같이 남성이 여성 혐오 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단정 지은 것이 아닌가? 이는 여성 혐오 범죄가 여성에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가정한 것이며 차별이라 생각한다.
“차별당한 사람은 있는데 했다는 사람은 없다"라는 차별이라는 행위 자체는 없는 것이라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사회 배려자, 농어촌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사람들을 보고 “실력도 안 되면서 운 좋게 이 학교에 다니는 주제에”라는 말하며 그 사람들이 너무 예민한 것이라 말한다. 우리도 한 번쯤은 같은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차별은 폭력과 같이 가해자가 해명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느끼는 것이다. 특별전형은 도움을 주려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이를 ‘부정적 시선’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에 내 친구도 내 사촌 형이 높은 대학을 다 붙고도 교대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문을 가지다 농어촌전형이라는 것을 알고 수긍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는 좋지 않은 점이라는 것을 정해놓아 많은 이에게 상처를 준다.
“무장애 놀이터, 선한 의도의 나쁜 결과”는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라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차별의 배경을 만드는 것이라 말해준다. 무장애 놀이터라는 것을 읽자마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무장애 놀이터를 만들어 놓으면 보통 놀이터에서 장애인 아이가 놀 경우 핀잔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내 생각과 복지가 틀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도와 다르게 차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반성하게 했다. 선한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불편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무장애 놀이터와 같이 우리 생활 속에 차별이 존재하는 시설과 복지가 있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는 차별에는 둔감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차별한 적 없다고요?”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눈치채지 못하고 둔감했던 많은 상황을 알려주고 상기시켜준다. 이 글은 우리가 생각하는 차별이 아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을 알려준다는 점이 강점이다. 하지만, 첫 번째 소주제에서 끝이 처음을 읽었을 때 반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글을 읽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가 과연 그들을 위한 것인가와 우리가 차별에 둔감하게 살아오지 않았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